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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보

[국보] 제3호 북한산 신라진흥왕순수비

[국보] 제3호 북한산 신라진흥왕순수비

북한산 신라 진흥대왕 순수비는 신라 제24대 국왕인 진흥왕(재위 540-576)이 북한산에 세운 비로서,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호이다.

이 비의 성격은 첫머리에 ‘순수(巡狩)’라는 표현이 있어,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순수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구기리(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 비봉(碑峰)에 있었으나 파손이 우려되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선사, 고대관 신라실에서 전시하고 있다.

비신(碑身)의 높이 높이는 약 155.1cm, 폭은 약 69cm, 두께는 약 16.6cm이다 .

지금까지 발견된 4기(基)의 진흥왕순수비 중 하나로, 화강암으로 된 이 비석의 형태는 다른 비와는 달리 직사각형으로 가공된 석재를 사용하여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비 몸돌의 오른쪽 아래로 약 25.1cm 되는 지점에서 왼쪽 아래로 약 45.4cm 되는 지점에 걸쳐 절단되어 있으나, 접합하였다. 비의 윗부분에는 비의 덮개돌이 들어갈 수 있도록 너비 약 69cm, 높이 약 6.7cm 정도를 돌출시키고 있다. 이 비의 덮개돌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받침돌은 지금도 비봉에 그대로 남아 있다.

비신의 상단(上端)에 1단의 촉을 만든 것으로 보아 원래는 개석(蓋石)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은 비신을 연마(硏磨)한 후 정면에 12행을 새겼으나 윗부분은 심하게 마멸되었고 제12행은 판독이 불가능하며, 그 밖에도 자획이 분명하지 않은 곳이 많다. 따라서 1행의 자수(字數)도 확실하지 않으나 30자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자체(字體)는 육조(六朝)식의 해서(楷書)이고 자경(字徑)은 3cm이다.

글뜻은 다른 3비의 비문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전반부는 순수의 사적(事蹟)에 관한 것이고, 후반은 수행한 인명(人名)을 열기(列記)한 듯하다. 보이지 않는 글자가 많아 자세한 내용을 알기는 어렵지만, 내용 중에서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것이 있다.

비의 첫머리에 ‘진흥태왕(眞興太王)’이 나타나는데, 이전의 왕인 지증왕과 법흥왕은 왕의 명칭으로 마립간, 매금왕, 태왕 등으로 일컬었으나, 진흥왕은 명실공히 자신을 태왕으로 칭하고 있다. 이는 고구려에서 사용한 태왕을 본떠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지만 신라의 달라진 위상을 알 수 있는 왕호이다. 다음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이 비문에 보이고 있다. 이 비에는 ‘사돌부 출신인 무력지가 잡간’이라고 하는데, 잡간은 신라 17관등 중에서 3등급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다. 김무력은 한강유역으로 확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장군으로 550년 무렵에는 5등급인 아간지였으나 561년 이후에는 잡간으로 승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이 석굴에 거주하는 ‘도인’이다. 도인은 볼교의 도를 닦아 깨달은 사람인 승려로서, 새로이 편입된 지역의 백성들을 교화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진흥왕은 단지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는 것에만 주력한 것이 아니라 종복지의 백성들을 교화하고자 하였다. 이 비에 보이는 ‘남천군주(南川軍主)’는 진흥왕대의 지방 및 군사제도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6세기 중엽 신라 진흥왕대 신라의 발전상과 이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비는 이끼가 끼어 있어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학대사왕심비(無學大師枉尋碑) 또는 몰자비(沒字碑) 등으로 불리어 왔다. 그러던 중 조선 후기 서유구가 10여 자를 판독하여 진흥왕순수비라 이름 지었고, 비석 측면에는 1816년(순조 16)과 그 다음해에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가 실사내독(實査來讀)한 사실이 '此新羅眞興大王巡狩之碑丙子七月金正喜金敬淵來讀(이것은 신라진흥대왕 순수비이다. 병자년(1816년) 7월 김정희, 김경연이 와서 비문을 읽었다), 己未八月三十日李濟鉉龍仁人(기미년(1859년) 8월 20일 용인사람 이제현), 丁丑六月八日金正喜趙寅永同來審定殘字 六十八字'(정축년(1817년) 6월 8일 김정희, 조인영이 함께 남아있는 글자 68자를 심정하였다)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로 김정희가 탁본하여 중국의 류연정에게 전달되었고 이것이 그의 [해동금석원]에 실리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이 재조사하여 [대정오년도고적조사보고]에 실렸다
현재 많은 부분이 절단 또는 손상되어 있고, 비신의 뒤쪽에는 무수한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비문에 명기(明記)되어 있었을 연호 간지(干支)가 마손되어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진흥왕 16년 왕이 북한산에 순행(巡幸)한 사실이 있으나 이를 곧 비의 건립연대로 보기는 어렵고, 남아 있는 글자의 내용을 검토하면 568년(진흥왕 29) 이후 진흥왕 생존시의 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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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비봉에 있는 진흥왕순수비는 모형이고

진품은 국보 제3호로써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 있습니다.

○ 순수비(巡狩碑, 돌 순, 사냥할 수/정복할 수) :

- 순수(巡狩) : 임금이 친히 살피며 돌아다니다.

- 진흥왕때 세운 순수비에는 현재;

북한산비(비봉),

황초령비(함경남도 황초령),

마운령비(함경남도 마운령),

창녕비(경상남도 창녕)의 넷이 남아있다고 하며,

비석에는 진흥왕의 영토확장을 기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진흥왕이 함경도부터 경상남도의 가야까지 영토를 확장한 것을 알 수 있지요.

신라 진흥왕의 영토확장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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