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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독서

[격언]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활동이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안일함이다. -괴테

10대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매일매일 지루한 하루였고, 왜 그리 시간이 안 갔는지 모른다. 나는 평생 10대로 남아있지 않을까? 고민까지 했으니깐.  하지만 지금은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느냐고 또 투덜대고 있다. 그때랑 지금이랑 차이가 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10대 시절에도 시간이 빨리갈때가 있었다. 시험기간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있을 때, 그리고 방학기간엔 또 왜 그리 시간이 빨리 가냐고 투덜거렸던 기억이 난다. 아마 지금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반 친구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기 바란다. 아마 그 중엔 시간이 빨리 간다. 시간이 모자르다라고 대답해주는 친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면 왜 시간이 빨리 가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아마 시간이 빨리 가는 친구는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친구일 것이다. 다른 친구보다 더 집중력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알고 있다.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시간이 빨리간다는것을 인생은 길수도 있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으면 아마 지루하고, 재미없으니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착각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있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모자르다는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의 시간이 지루하다면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집어 던지고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세요. 아마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당신도 모르게 당신에게 숨어있는 놀라운 능력을 발견할 것입니다.

추천 도서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추천 서점 : 영풍문고

책소개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7번째 작품
비극적 내용으로 인간 심리를 완벽하게 묘사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80년이 넘는 생애 동안 시와 소설, 희곡과 산문, 그리고 많은 양의 서한을 남긴 괴테의 대표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8세기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한 신드롬이자 가장 성공한 문학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르테르 효과’가 일어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소설 속 자살을 시도했으며, 새로운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며 이혼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더 나아가 주인공 베르테르가 입던 푸른 연미복과 노란 바지가 유행했으며, 그의 화술을 따라하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많은 비평가들은 괴테의 많은 작품들이 자전적이라고 평가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서간체 형식을 빌려 쓰였으며, 소설 속 주인공들과 괴테 자신이 체험한 일과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 일치하는 점 때문이다. 편지는 자기 고백과 영혼 표현의 열망에 처음으로 탐닉했던 그 시대의 가장 내밀한 의사 전달의 형식이었다. 편지는 공감하는 상대를 전제로 한 고백이고, 이 같은 전달을 통해 개별적인 체험에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에 빠져 마침내 자살하고 만 베르테르의 순수한 열정과 사랑을 더 충실히 담아낸 작품이다. 괴테는 ‘베르테르’를 통해 인간 본연의 사랑과 열정에 대한 찬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예술적이고 이상적인 감정으로 승화했다. [YES24 제공]

저자소개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년 8월, 황실 고문관인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5년에 법률학을 배우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했다. 이때 처음으로 자유롭게 레싱, 빙켈만 등을 읽었다. 그러나 1768년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했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 대학에 입학하여 다시 법률 공부를 하는 동시에 의학 강의도 들었다. 이때 헤르더와 교제하면서 호메로스, 성서, 오시안, 민요, 셰익스피어 등을 알게 되는데, 이로써 '슈투름 운트 드랑', 즉 질풍노도 문학 운동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법률 학위를 받은 괴테는 고향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문학에도 열성을 다하여 『괴츠 폰 베를리힝엔』의 초고를 완성했다. 이 희곡은 출간되자 대중과 지식인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고, 괴테는 독일의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1772년 괴테는 베츨라의 고등 법원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괴테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바로 그를 독일의 작가에서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서게 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의 무대가 된 곳이기 때문이다. 베츨라에서 괴테는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연모했는데, 이 체험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거의 사실 그대로 담겨 있다. 부프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괴테는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3년간 괴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문학적 결실을 거두었다. 바로 기존의 무미건조한 형식미에서 탈피하여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할 것과 인습적에 것에 대한 저항을 모토로 한 슈투름 운트 드랑의 시기였던 것이다. 그 절정을 이룬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1775년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이로써 괴테는 슈투름 운트 드랑의 시기를 마감하고 추밀참사관에 임명되어 행정적인 활동을 했다. 다망한 정무 생활 틈에서도 지리학, 식물학, 광물학 등 자연에 대한 연구에도 몰두했다. 그러나 창작 면에서는 침체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1786년(37세)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름으로써 다시 예술의 세계로 돌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2년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에게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1788년 바이마르로 돌아온 괴테는 정무에서 떠나 고독 속으로 숨었다. 이때 나중에 정식 부인이 된, 평민 출신의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실러와도 처음으로 만났다. 1794년부터 실러와 깊은 친교를 나누기 시작한 괴테는 실러가 발행하던 문학 잡지인 『호렌』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1805년부터 1815년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 동안 나폴레옹을 세 번이나 만난 한편, 독일 문학 최초의 사회 소설로 평가받는 『친화력』를 완성했고, 자서전의 백미로 꼽히는 『시와 진실』 1∼3부도 완성했으며, 『서동시집』 집필에도 착수했다. 1821년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완성했으며, 죽기 1년 전 대작 『파우스트』를 완성했으며 1832년 바이마르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YES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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