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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독서

자신의 날개짓만큼 더 높이 나는 새는 없다.-W.블레이크

외유내강 겉보기에는 부드러우나 마음속은 꿋꿋하고 굳세다는 말. 비록 오늘은 위태롭게 살고 있지만 오늘보다는 내일, 그리고 내일 또 내일엔 나의 꿈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날 힘들게 할 수 있겠지만, 내가 가진 꿈을 향해 나의 날개를 펼치면 세상이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난 행복해질 것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예수님은 살아있을 때 많은 탄압을 받았지만, 그 올바른 뜻은 몇 세기가 흘러도 이어져 내려온다. 당신도 당신의 날개짓을 하세요. 그것이 똑바른 길이라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추천 도서 :  블레이크 시선

추천 서점 : 반디앤루니스

책소개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한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시리즈 『블레이크 시선』. 영국 태생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단순한 시어를 통해 민중을 불행하게 만드는 영국 현실의 모습을 폭로하고 비판한 62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저자가 1973년까지 창작한 시 중 짧은 시 전부에다가, 3편의 장시를 번역한 것이다. 오랜 시간 윌리엄 블레이크에 대해서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 해설, 친절한 주석, 그리고 풍부한 작가 소개를 맡았다.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윌리엄 블레이크

저자 윌리엄 블레이크는 1757년 11월 28일 런던의 브로드가(BROAD STREET) 28번지에서 아버지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와 어머니 캐서린 블레이크(CATHERINE BLAKE)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2세가 되는 1769년부터 짧은 시들을 습작했고, 이때의 작품들은 《시적 소묘(POETICAL SKETCHES)》(1783)에 실려 있다. 15세 때부터 7년 동안 당시 꽤 알려져 있던 판화가 제임스 버자이어(JAMES BASIRE) 밑에서 도제 생활을 했다. 그의 이른바 완성작이라고 불리는 동판화 시화집 제작에 필요한 밑그림, 수채화, 유화 등의 기술들이 이때 연마된다.
청년 블레이크는 남의 책에 삽화를 그려 넣거나, 판화를 제작해 돈을 벌었고, 간간이 시를 쓰기도 했다. 그는 25세가 되던 1782년에 채소 농장을 경영하던 윌리엄 바우처(WILLIAM BOUCHER)의 딸 캐서린 소피아 바우처(CATHERINE SOPHIA BOUCHER)와 결혼한다. 결혼한 이듬해에 인쇄된 《시적 소묘》 이후 블레이크는 더 많은 자신의 글과 그림을 동판화로 제작하는데, ‘채색 인쇄법(ILLUMINATED PRINTING)’이라는 자기 고유의 동판화 제작법을 고안해 내기도 한다. 《순수와 경험의 노래》를 위시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모두 이 방법에 의해 동판화로 제작되었다.
1790년 템스 강의 반대편 지역인 램버스(LAMBETH)로 이사하고 이곳에서 ‘램버스 예언시’라고 불리는 일련의 예언시들을 쓴다. 이때의 블레이크는 출판업자 조지프 존슨(JOSEPH JOHNSON)의 출판물에 삽화를 그려 넣기도 하며, 그의 집에서 당시의 급진적 개혁주의자들인 조지프 프리슬리(JOSEPH PRIESTLEY),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등과 회동하게 된 것도 이 어름이다. 블레이크가는 1800년에 남부 해안의 시골 마을 펠펌(FELPHAM)의 조그만 오두막으로 이사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의 장시 3부작이 구상되거나 일부 창작된다. 1803년 8월에 있었던 펠펌에서의 술 취한 국왕 직속 기병대 소속의 사병 ‘스코필드(JOHN SCHOFIELD) 사건’ 으로, 일련의 송사 이후 이 사건은 그의 시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는 스코필드와 그 동료를 《예루살렘》에서 악당의 한 무리로 형상화해 심판한다. 나아가 그는 후기의 장시들을 두꺼운 개인적 신화 체계로 둘러싸 시의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화했다. 만년의 블레이크는 시 창작보다는 동판화 작업에 더 경주했다. 이 시기 초서(GEOFFREY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 그리고 <욥기> 및 단테의 작품, 밀턴의 《복낙원》 등의 삽화를 제작했다. 블레이크는 1827년 8월 12일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세기 중엽 스윈번(ALGERNON CHARLES SWINBURNE)을 위시한 라파엘전파의 시인들이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엽을 지나며 그의 시세계가 지닌 독창성과 문학적 가치는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성취로 간주되게 되었다. 반파시즘을 호소한 희곡 <하얀 역병>(1937)과 <어머니>(1938)에서는 군비 경쟁의 정지를 호소하고, 나치의 체코슬로바키아 침입을 앞두고 침략자와의 싸움을 호소한다. 일설에 의하면 차페크가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당시 유럽을 영향권 아래에 두고 있던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스에 의해 반(反)나치주의자였던 그의 수상이 무위로 돌아갔다고 한다. 차페크의 미망인의 증언에 따르면, 히틀러의 눈치를 보던 스웨덴 한림원이 차페크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작품을 다시 쓰면 노벨상을 고려해 보겠다고 했지만, 그는 벌써 박사 논문을 제출했으니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독일 나치에게 넘겨준다는, 영국·프랑스·독일 3국에 의한 뮌헨 협정의 체결로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1938년 크리스마스에, 48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현대 사회와 기계문명의 병폐에 대한 아픔을 작품화한 문학적 재능과 열정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지금까지도 깊이 기억되고 있다.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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